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肅靖門(숙정문) 이야기

* 오성 * 2013. 4. 3. 16:30

 肅靖門(숙정문) 이야기

    

             

 

      

肅靖門(숙정문) 이야기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중에도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은 알아도 북대문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서대문은 없지만 어느쪽에 있었던지는 안다.)
四大門의 하나로 당연히 있어야할 北大門은 으례히 저 북쪽에 있겠지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 실제로 가 본 사람도 거의 없고 그 존재 자체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조차도
없는 게 실정이다.


그 대문의 호칭도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과 어울리게 북대문이라고 하지도 않고
숙정문이라고 하니 더욱 일반인들에겐 낯설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 숙정문은 북대문, 북문, 북청문 등 여러 이름이 있었으나 지금은 숙정문으로
공식명칭이 되었다.

(숙정문 : 일제시대에 촬영된 사진으로 보인다.)

지금은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어 숙정문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 숙정문이 바로 북대문으로
사실은 나도 한번도 가 본 적이 없고 막연히 청와대 북쪽 어디쯤엔가 있겠지 하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최근에 일반에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때나
드나들 수 있는 건 아니고 신분확인 절차를 거쳐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가 본 적이 없어 정확한 위치를 모르나 청와대 뒷쪽으로 삼청공원과
성균관대학 뒷산 중간쯤에 있는 것으로만 안다.

숙정문, 즉 북대문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四大門과 같이 만들어졌으나 워낙 한적한
산속이고 이용하는 사람도 드물어 大門이란 이름도 못 얻고 그저 北門이라고만 했는데
평양이나 중국으로 갈 때는 서대문을 빠져나와 무학재를 넘어 북으로 향했기 때문에
북대문은 험한 산속에서 大門으로서의 기능은 못하고 출입하는 사람도 없이 외로이
서 있는 죽은 門이었었다.
애초에 四大門을 세울 때 北大門의 위치를 잘못 선정했다고 생각한다.

기록에 의하면 태종때 이 北門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가 올라 폐쇄해버렸다하고
비공식적으로 전하는 말로는 이곳에 부녀자들 사이에서 이 북문을 세번 다녀오면 그 해의
액운이 없어진다는 속설이 퍼져 이곳에 부녀자들의 출입이 빈번해지자 이 깊은 산중에서
여자 꽃밭이 형성되고 여기에 할 일 없는 사내 건달들이 따라와 풍기문란한 행위가
많았다고 한다.

아마도 공식적인 풍수지리적 폐쇄이유 보다는 항간에 구전되어온 풍기문란을 이유로
폐쇄했다는 속설이 맞는 것 같다.

건달기가 있는 사내들과 알게 모르게 수작이 오갔을 것이요 도의와 규범의 소외지대에서
벌어졌을 桃色풍경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사내 못난 것, 北門에서 호강받는다."는 서울속담이 전하는 것으로도 당시의 북문에서
있었던 별천지 풍경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마도 성적 불만이 있는 여인들이
액운축출 핑계로 이곳에 진을 치고 boy-hunting을 즐겼던 모양이다.

'北門을 열어놓으면 陰風이 분다.'는 말은 곧 부녀자의 자유분방에 대한 윤리적 억압이요
그 음풍을 막고자 북문을 폐쇄한 것은 엄격한 유교를 국교로 채택한 조선정부로서는
당연한 조치였을 것이다.
또 한가지 이곳이 풍기문란의 본거지가 된 것은 공교롭게도 이 일대가 뽕밭이었던 것도
한 가지 원인이 되었다.

중국에서도 예로부터 뽕밭은 남녀가 엉켜 음탕한 짓을 하는 장소로 통했는데
우리나라라고 다를 바 없었을 것이고 이 북대문 일대의 뽕밭이 풍기문란을 더욱 조장케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때 개방되었으나 워낙 이곳을 찾는 사람이 없다가 1968년 1.21 사태때 다시
폐쇄되었다가 최근 일반에 다시 개방되었다.

현재의 숙정문은 박정희대통령시절인 1976년에 복원되었다.  [이태준님의 글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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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는 남대문은 숭례문으로, 동대문은 흥인지문등으로 불리지않았는가 모르겠읍니다.
풍수지리설도 중국에서 조선의 흥기를 막기위해 꺼꾸로 만들어준것을 지금까지 지켜오고있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땅의 지기를 눌러서 그곳을 다스리려면 그곳에 인조건축물을 세워야 하는데,

그래서 동서고금에 산꼭대기마다 동상이나 비석을 세우는것이 예로되어있고,

농업이 주 생업인 중국인들의 생활과 기후적으로 전혀 맞지않는 몽고지방이나 신강, 티베트 등이

아직도 중국인들의 지배하에 있는 이유도 만리장성등 건축물을 세워 지기를 눌렀기 때문인것으로 압니다.
서양도 산꼭대기에 십자가나 건물을 놓는등 이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당신은 나의 운명 - 석지훈 노래